2010년 6월 25일 금요일

iOS 4의 키보드 부분 Review

iOS 4가 출시한지 벌 써 3일 지났다.
iOS 4 GM(Gold Master)버젼을 받아 사용하던 나는, 여러 기능의 개선된 부분을 보았지만,
오늘 그 중에서 키보드 부분의 진화된 부분을 Review해보려고 한다.

1.키보드 스위칭

사실 이 부분은 iOS 3.1.3 일 때,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이지 iOS 4에서 새로 추가 된건지는 잘 모르겠다^^


 

빠른 키보드 전환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한 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에, 만약 이번 버젼에 새로 추가된 거라면 내가 먼저 Review하는 듯 하다^^ 기분 좋음

2. 이모티콘 키보드가 추가됨

 

이 부분은 조금 수정을 해야겠네요;;;; 예전 남아있던 어플의 잔재인듯 합니다;;;;; iPhone전용 이모티콘 어플이었는데, 지웠는데, 키보드 목록은 남아있었나 봅니다...^^;;;;;

 

이모지 어플의 잔재입니다. 착오 없으시길;;;; 이부분 써놨는데도 계속 말이 나오는건 왜일까요;;;

 

ㅋㅋㅋ

 

또 착오없으셔야 할 것은 이 키보드 부분만 잔재이지 나머지 기능은 iOS 4에서 다 되는 기능입니다.

 


 

키보드 종류중 이모티콘 키보드


설정 > 일반 > 키보드 > 다국어
키보드 에서 보면 이모티콘이라는 키보드를 볼 수 이가 있다.
(ㄱㄴㄷ 순으로 sorting되니 헤메지 마시고 "ㅇ" 으로 시작 키보드를 찾아 보세요)^^


 

키보드가 추가된 모습


자 이모티 콘이라는 키보드가 추가 된 것이 보이시죠??

 

이모티콘 키보드 화면


그럼 글을 쓰는 곳에 가면 아래와 같이 이모티콘을 볼 수가 있답니다. 예전에는 어플받아 쓰셨죠?? 이젠 그럴 필요가 없는거죠....^^ ㅋㅋ 괜찮아 졌죠??

단, 이 이모티콘은 iPhone끼리만 호환된다는걸 기억하세요

[다시 씁니다.]

이 부분은 조금 수정을 해야겠네요;;;; 예전 남아있던 어플의 잔재인듯 합니다;;;;; iPhone전용 이모티콘 어플이었는데, 지웠는데, 키보드 목록은 남아있었나 봅니다...^^;;;;;

 

이모지 어플의 잔재입니다. 착오 없으시길;;;; 이부분 써놨는데도 계속 말이 나오는건 왜일까요;;;

 

ㅋㅋㅋ

 

또 착오없으셔야 할 것은 이 키보드 부분만 잔재이지 나머지 기능 Review된 부분은 iOS 4에서 다 되는 기능입니다.


3.문자 이모티콘

캬~이 부분 때문에 우리나라 키보드가 비교되서 조금 아쉬운데, 일본어 키보드를 추가해야 한다는 거죠;;
왜 우리나라 키보드에는 이런 문자 이모티콘을 기능 적으로 추가하지 않았는지 궁굼해지네요;;;
너무 클래식해요;;;


 

일본어 Ten Key키보드가 추가된 모습


일단 일본어 키보드를 추가해야 합니다. 일본어 키보드는 두 종류가 있는데, 일반적인 키보드(Romaji)와 Ten key입니다. Ten key는 아래 보시는 바와 같이 예전 핸드폰 키패드형식의 일본어 자판입니다.

 


 

문자이모티콘 버튼



자 여기보면 "^_^" 버튼이 보이시죠?? 요고를 누르면 문자이모티콘이 나타납니다.
문자 이모티콘은 iPhone전용 이모티콘과 다르게 일반적인 핸드폰과 상호 호완이 되기 때문에,
iPhone 전용 이모티콘 보다 유용하죠^^

 


 

문자이모티콘 확장



일단 "^_^" 버튼을 누르면 위와 같이 한줄로 이모티콘이 정렬되어서 나옵니다.
이것 만으로도 대단한데, 아래와 같이 완전 대박 이걸 정리한 일본어 키패드 개발자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네요.
일본인의 기술에 기대야 하는 현실이 조금 슬프긴 하지만요.

위에 보면 "::▶" 버튼 누르면 아래와 같이 다양한 이모티콘 모음이 나옵니다!!! 만약 한국 키보드 개발자가 한국인이라면, 좀 보고 배웠음 좋겠네요;;;;

 

문자이모티콘


이 부분까지만해도 감사하죠^^;;;

다음은 iFunChat과 같은 어플에서 지원 했던 ♥와 같은 키를 이 번에 추가했어요 완전 좋죠^^;;;

*참 일본어 키패드는 Ten Key던 일반 키보드던 상관없이 다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Ten Key가 조금더 버튼 누르기도 쉽고 눈에 바로 띄어서 추천하고 싶네요^^*

4.♥와 같은 특수문자 키보드 추가

이번에도 역시 안타깝게도 일본어 키패드에 기대야만 한답니다.
마찬가지로 Ten Key에서 보여드리죠^^

 

특수문자키보드



자 다시 Ten Key 키보드 입니다.
위에가 기본적인 키보드인데요, "ABC"버튼 보이시죠 이 버튼을 더블 클릭합니다.
그럼 아래와 같은 키보드가 보이죠

 

 

특수문자키보드



요거 캡쳐를 못했는데, "1"버튼을 길게 누르면, ☆, ♪, →가 사방으로 보입니다.
그 중에 아무거나 하나를 선택하게 되면 아래와 같이 특수문자가 한줄로 간편하게 나타납니다.
문자이모티콘이랑 같죠?? 우리도 좀 이런거 해줬음;;;;

 

특수문자키보드



마찬가지로 "::▶"버튼을 누르면
아래와 같이 여러가지 특수키가 나옵니다. 이것 역시 일반핸드폰과 상호 호완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iFunChat어플을 깔아서 복사해서 붙여 넣기 하던 것이 훨 씬 수월해 졌죠???


 

특수문자키보드 확장



자~~아래와 같이 ♥가 입력된 것이 보이죠?? ㅎㅎㅎㅎㅎ

 

특수문자 선택한 화면



5.Bug Report

버그도 리뷰에 포함 시켜야 하겠죠?? 두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화면문제인지, 키보드 문제인지 아직 헷갈리는 부분입니다. 제가 돈만있음 개발툴 사서 해보면서 테스트 해볼 수 있을 텐데.....일년에 $990을 감당하기에 제 현실이 너무 초라하네요;;;;

아래와 같습니다. 트위터와 같은 SNS에서 글을 쓰면 아래와 같이 2줄이상이 되면 글을 계속 쓰고 있는데, 화면에 보이지 않습니다. 커서(Cursor)는 계속 움직이는데, 글은 안보입니다.

 

버그1




이것에 글을 보이게 하려면, 길게 Tab하면 글이 보입니다. 화면문제인지, 키보드 문제인지 아시는 분은 이야기좀, 이거 어떻게 리포트할 수 있는지 궁굼하네요^^;;;

그 다음은 "TAB"버튼의 활성화 문제입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죠 "TAB"키는 활성화 되어 있는데, 된소리 문자(ㄲ,ㄸ,ㅃ등)는 안보이죠??

 

버그2




이 문제는 특수키 버튼을 누르면 활성화 될 때도 있고, 키보드 변환 할 때도 증세가 보이는거 같습니다.
이건 확실히 키보드 어플의 무네인듯 한데, 애플에 어떻게 리포트 할 지 알려주실분!!!


마무리

지금까지 iOS4의 키보드 부분에 대한 Review였습니다.

 

참 iPhone전용 이모티콘은 예전 깔려있었던 어플의 잔재입니다.;;;;

하지만 나머진 확실히 되는 것이랍니다....

 

사진은 GM번젼에서 캡쳐한 것이 아니라 정식버젼에서 캡쳐한 것입니다....^^

 


앞으로 조금더 좋은 좋은 정보로 계속해서 Bloging 했음 좋겠네요^^

2010년 6월 17일 목요일

아이폰 도난 걱정 뚝! 어플로 ‘도난방지’

아이폰 도난 걱정 뚝! 어플로 ‘도난방지’
정윤희 기자 yuni@zdnet.co.kr 2010.06.08 / PM 00:03
[지디넷코리아]최근 아이폰 이용자가 70만 명이 넘어서면서 도난, 분실 등이 이슈로 떠올랐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아이폰을 비롯한 각종 스마트폰이 업무, 모바일 뱅킹, 생활 등 다양한 곳에 활용되면서 고도로 정보가 집적된 기기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마트폰이나 고가의 기기는 쉽게 범죄의 타깃이 되기도 하는 만큼 아이폰 사용자들은 도난 방지에 안간힘이다. 각종 아이폰 관련 카페 등에는 도난 및 분실 신고가 올라오는가 하면 다양한 도난 방지 방법에 대한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아이폰 사용자들은 따로 어플리케이션(이하 어플)을 다운로드 받아 도난 방지에 힘쓰는 모양새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앱스토어에서는 이러한 사용자들의 욕구에 맞춘 다양한 도난 방지 어플리케이션이 출시돼 눈길을 끈다.

 

가장 눈에 띄는 어플은 대학생 개발자 홍기종씨(25, 아주대학교)가 등록한 ‘진돗개’다. 지난달 28일 국내 앱스토어에 등록된 ‘진돗개’는 내장 센서를 이용해 생활 충격과 도난 시도를 스스로 판단하는 도난 방지 어플이다.

 

▲ 대학생 개발자 홍기종씨가 개발한 `진돗개`

‘진돗개’는 도난 시도가 감지되면 설정에 따라 30초간 도난 알림 경고음을 발생시키는 ‘진돗개 짖기’와 자동으로 긴급 번호에 통화 시도를 하는 ‘주인님께 신고하기’가 실행된다. 이용자는 도난 시 연락할 긴급 전화번호를 설정할 수 있고 경보음 볼륨도 0에서 10까지 마음대로 지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홈 버튼과 종료버튼에도 꺼지지 않는다.

 

홍씨는 “기존 어플들은 하루가 지난 다음에 위치가 추적되거나 소소한 생활 충격에도 알람이 울리는 등 불편함이 많았다”며 “‘진돗개’는 다양한 상황에서의 충격량을 일일이 분석한 후 프로그램화 해 일상생활에서의 실용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아울러 “해외 앱스토어에 출시되기도 전부터 미국, 홍콩, 영국 등에서 ‘진돗개’를 구매하는 등 해외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홍씨는 실제로 다양한 도난 상황을 시연한 동영상을 아이폰 관련 카페 및 커뮤니티에 올려 누리꾼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국내 앱스토어에서 2.99달러에 판매되던 ‘진돗개’는 8일 현재 북미 앱스토어(북미 명 ‘재즈 독’) 출시 기념으로 0.99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아울러 일본 앱스토어에는 ‘락 독(Lock Dog)’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 준비 중이다.
▲ 자신의 아이폰 위치를 추적해 주는 `아이하운드`

‘아이하운드(iHound)’는 지도상에서 자신의 아이폰 위치를 알려주는 어플이다. 어플을 다운로드 받아 간단하게 회원 가입만 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다.

 

아이폰을 도난 혹은 분실했을 때 이용자는 ‘아이하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아이폰에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아이폰에 도착한 메시지는 상당히 시끄러운 소리를 내게 되는데 이를 끄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잠금 버튼을 밀어야 한다. 바로 이 때 자동으로 ‘아이하운드’가 실행되는 방식.

 

▲ 다양한 모드를 지정할 수 있는 `디프 부스터`

‘디프 부스터(Thief Buster)’는 비밀 번호를 지정한 후 터치 모드, 포켓 모드, 가방 모드 등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사용할 수 있다. 도난 상황 발생 시에는 자동으로 최대 음량의 알람이 울리게 되며 홈 버튼은 어플을 재실행 시키게 된다.

 

이밖에 향후 스텔스 모드가 탑재된 GPS 위치정보도 추가될 예정이다. ‘디프 부스터’는 영어와 스페인어가 지원되며 0.99달러에 판매 중이다.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는 한 누리꾼은 “아이폰에 중요한 정보를 많이 넣고 다니다보니 항상 도난이나 분실에 신경을 쓰게 된다”며 “도난 방지 어플 하나 정도는 필수로 깔아놓고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6월 13일 일요일

코기토의 철학자 데카르트

기독교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중세 철학을 만들고 발전시킨 것은 바로 이 둘이다. 이들 사이의 부조화를 발견하고 해결하여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 중세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목표’라는 것은 한 가지를 전제한다. 그것은 기독교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그 어떤 것도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중세 학자들에게 이 둘은 의심할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진리, 즉 도그마(dogma)였다.


그러나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기독교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확고부동한 지위는 점차 흔들리게 된다. 성경 해석에 있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학적 권위를 가지고 해결책을 제시했던 교황청은 루터 이후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새롭게 알려지기 시작했던 다양한 그리스 철학자들의 글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독자적 지위를 위협했다. 다양한 그리스 철학자들의 글들로부터 우주와 인간에 대한 다른 생각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런 생각들이 하나로 통일될 수 없다는 것도 점차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도그마의 위기! 이것이 15, 16세기 유럽의 지적인 분위기였다.

 

 

 

 

도그마의 위기는 회의주의(skepticism)를 낳는다. 여기서 회의주의란 절대적 진리, 의심할 수 없는 진리에 대한 회의를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지적 능력을 이용해 절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없으며, 나아가 절대적 진리가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인간의 감각 경험은 불완전하다. 자라를 보고 놀란 당신은 솥뚜껑을 보고 놀라기도 한다. 설사 당신이 그런 착각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감각 경험 그 자체는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당신은 지금 컴퓨터를 보고 있지만, 실제로 당신 앞에 컴퓨터가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다. 당신은 매트릭스 안에 갇혀 전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감각적 자극을 받고 있을 수도 있다. 당신이 보고 있는 컴퓨터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실제로 컴퓨터가 있는 것은 아니며 단지 매트릭스로부터 전달된 전기 신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듯 감각 경험만으로는 이 세계가 매트릭스의 세계인지 그렇지 않은지 결정할 수 없다. 파란 알약과 빨간 알약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감각 경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물론 이런 감각 경험에 대한 회의는 인간의 다른 지적 능력으로 확장될 수 있다.


몽테뉴(Montaigne, 1533~1592)는 대표적인 16세기 회의주의자다. 당시 새롭게 발견된 퓌론주의(Pyrrhonism)에 경도된 사상가들은 절대적 진리에 도달하기에는 인간의 지적 능력은 불완전하다고 강변한다. 이 회의주의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회의주의는 극복할 필요가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선, 회의주의는 극복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다양한 과학기술들을 유용하게 사용한다. 이런 유용한 과학기술들은 다양한 감각 경험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 감각 경험들을 신뢰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과학기술들을 신뢰할 수 없다. 따라서 철저한 회의주의자들은 과학기술들을 신뢰할 수 없으며, 따라서 과학기술의 유용성 같은 것도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은 문제다. 특히 과학혁명 이후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과학에 의해서 사회는 풍요로워지고 인류는 진보할 수 있으리라 믿었으며, 더 나아가 이것을 신이 그들에게 부여한 중요한 사명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지식의 확실성을 부정하는 회의주의는 당연히 극복해야할 장애물이었다.

서양 근대철학의 아버지, 르네 데카르트.

 

그럼 어떻게 회의주의를 극복할 것인가? 물론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절대적 진리를 획득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개연적인 진리는 획득할 수 있다는 온건한 주장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주장은 회의주의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지식의 유용성을 설명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이와 달리 회의주의자들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 즉 인류가 절대적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거나, 혹은 그런 절대적 지식을 제시할 수 있는가? 이 일을 하려고 한 사람이 바로 데카르트이다. 그는 회의주의에 맞서, 인간 지성은 절대 확실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그런 절대적 지식을 제시한다. 그의 목표는 이성을 사용하여 철학적 진리, 즉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데카르트는 1596년 프랑스의 투렌(Touraine)이라는 지역에서 태어났다. 성장한 이후 주로 네덜란드에서 활동했다. 말년에는 스웨덴에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철학을 존경하던 스웨덴 여왕의 초청 때문이었다. 결국 1650년 데카르트는 스웨덴의 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된다. 데카르트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근대 철학의 두 기둥이었던 합리론과 경험론 중에서 합리론의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더불어 그는 과학자이자 수학자였으며,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물론 그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고 말할 때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것과 분명히 다르다. 아퀴나스가 훌륭한 철학자이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신학자였다면, 데카르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과학자이자 철학자였다.

 

데카르트를 초청한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과 데카르트(맨 오른쪽).


이제 설명해보자. 그는 어떻게 철학적 진리에 도달했으며 그렇게 해서 도달한 철학적 진리는 무엇인가? 회의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데카르트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회의, 즉 의심이었다. 그는 회의주의자들의 의심을 끝까지 그리고 철저하게 밀고 나가고자 했다. 만약 그런 의심이 성공적이라면, 그런 의심의 끝에서 더 이상 의심될 수 없는 무언가가 발견되리라고 기대했다. 이런 의심의 방법을 철학자들은 방법적 회의라고 한다. 의심에 의심을 거듭한 끝에 결코 의심될 수 없는 것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의심하는가? 우리는 모든 개별적 지식들을 철저하고 완벽하게 의심할 수 있는가? 이런 의심은 끝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의심스러운 개별적인 지식들은 그 수가 무척 많고 또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철저하고 완벽한 의심을 할 수 있는가? 한 가지 길은 그런 다양한 개별적 지식을 낳는 지적인 방법을 의심하는 것이다. 즉 다양한 지식을 낳는다고 여겨지는 지적인 방법들이 과연 확실한 진리를 보장하는지 검토하는 것이다. 그럼 우리의 지식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 획득되는가? 아마도 첫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감각 경험을 통한 지식의 획득이다. 나는 경험을 통해서 내 앞에 있는 노란색 지폐가 5만원권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감각 경험이라는 방법은 지식의 확실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우리는 착각했을 수 있다. 사실은 5천원권 지폐인데, 나의 기대와 희망이 5만원권 지폐로 착각하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데카르트는 감각 경험은 확실한 지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논변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꿈의 가설이다. 나는 어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으며, 그 비행기 창문 너머로 해가 뜨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꿈 속에서도 무언가를 경험하고 무언가를 본다. 즉 감각 경험은 꿈 속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각 경험만으로는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태양이 실제로 있는 것인지, 단지 꿈 속에 있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즉 감각 경험은 우리에게 확실한 지식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꿈 속이든 꿈 밖이든 항상 성립하는 것도 있다. 가령, 2+3=5라는 것은 꿈이 아닌 세계에서도, 꿈에서도 참이다. 우리가 매트릭스 속에 갇혀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2+3=5이고, 삼각형은 세 개의 변을 가지며, 둥근 사각형은 불가능하다. 꿈에서도 이런 지식이 성립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러한 수학적 지식들을 획득하는 데 있어, 감각 경험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지식들은 감각 경험이 아니라 순수하게 정신적인 방법을 통해서 획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그 순수하게 정신적인 방법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성, 직관, 연역과 같은 다소 어려운 철학적 개념이 필요하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전반적인 의도를 이해하는 것만이 목표라면 굳이 그런 개념들을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순수하게 정신적인 방법을 통해 지식의 확실성이 보장되는지 여부다. 이 순간 데카르트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덧붙인다. 그것은 유명한 ‘악마의 가설’이다. 전능한 악마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수학적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 즉 순수하게 정신적인 방법을 그 악마가 만들었다고 해보자. 더불어 악마는 그 순수하게 정신적인 방법을 통해서 지식을 획득할 때마다 인간이 실수를 저지르도록 장치를 해놓았다고 가정하자. 예를 들어 우리가 ‘2 더하기 3이 5’라는 것이 너무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악마가 만들어 놓은 속임수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악마가 존재할 수 있다면, 순수하게 정신적인 능력을 통해서 획득한 지식의 확실성 역시 충분하게 의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수학적 진리를 포함해서 가능한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그런데, 의심에 의심을 계속하던 데카르트는 의심의 끄트머리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ego cogito, ergo sum)’라는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주목하고서, 이것을 내가 찾고 있는 제일원리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 [방법서설] 중에서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다고 하더라도, 꿈을 꾸고 있는 나는 존재한다. 내가 지금 매트릭스에 갇혀 있다고 하더라도, 매트릭스로부터 전기 자극을 받고 있는 나는 존재한다. 내가 지금 전능한 악마에서 철저히 속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속임을 당하는 나는 반드시 존재한다. 이런 의심을 하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도, 의심을 하는 나는 존재한다. 나는 의심한다,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보통 ‘코기토’라고 불리는 바로 이것이 회의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데카르트가 찾아낸 절대 확실한 철학적 진리다. 그런데 코기토에 등장하는 ‘나’는 무엇인가? 방법적 회의를 통해 내가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데 있어 나의 물질적인 부분, 즉 신체는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오로지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내가 존재한다는 결론에 영향을 주었을 뿐이다. 결국 코기토에 등장하는 ‘나’는 사유하는 무엇 혹은 정신적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나의 정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금껏 살펴본 대로, 데카르트는 기독교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라는 두 도그마가 위기에 처한 시대에 새로운 도그마, 즉 생각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절대적이고 의심할 수 없는 진리를 만들어 낸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철학은 신독단론(Neo-dogmatism)의 일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의심의 끝에서 정신이 존재한다는 진리를 획득한 데카르트는 이제 다른 명징한 진리들을 찾아 나선다. 그 첫 시작은 신의 현존을 증명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물질적인 것의 현존을 증명하는 것이다. 방금 언급했듯이 정신적인 것의 존재는 물질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즉 정신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과 철저하게 구분되며, 그것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데카르트에게 있어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서로 독립적인 두 실체가 된다. 이런 점에서 일반적으로 데카르트의 철학은 이원론이라고 불린다. 정신적인 것의 본질은 사유이며, 물질적인 것의 본질은 연장이다. 어렵게 들리지만 간단하다. 정신적이라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며, 물질적이라는 것은 시공간 좌표의 어딘가를 점유한다는 말이다.

 

데카르트가 보기에 여러 동물들 중에서 우리 인간만이 이 두 가지 실체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은 사유를 할 수 있으며, 인간은 신체를 가지고도 있다. 이런 데카르트의 철학을 20세기 심리철학자인 길버트 라일(Gilbert Ryle, 1900~1976)은 ‘기계 속의 유령(the ghost in the machine)이라고 비꼬았다. 사실 데카르트의 이런 심신(心身) 이원론은 20세기 심리철학과 인지과학에 있어 극복해야 할 안티테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심리철학 교과서들은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에서 시작하며, 그것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현대 철학 이론들을 소개한다.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의 문제점 중에서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자. 그의 심리철학에 있어 중요한 것은 정신과 물질이 서로 독립적인 실체라는 것이다. 이 둘이 독립적인 실체라는 것은 어느 하나가 없어도 다른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가령 인간이 아닌 동물들은 정신이 없는 기계일 뿐이다. 천사나 신과 같은 것은 물질적인 것에 구속되지 않는 정신적인 것일 테다. 암튼 이 둘은 서로 구분될 뿐만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서 서로에게 의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일견 우리의 경험과 잘 맞지 않는 듯이 보인다. 당신의 신체는 당연히 당신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 가령, 당신의 신체 중 일부가 불에 데었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그 신체의 변화가 당신의 마음에 어떤 고통을 야기한다. 그리고 그 고통에 대해서 당신은 생각하고 되도록 그것을 피하려고 마음먹을 것이다. 반대 방향도 역시 성립한다.

데카르트의 주요 저작인 [방법서설]의 표지.

 

당신의 마음은 당신의 신체에 영향을 준다. 손을 올리고자 하는 당신의 의도(정신적인 것)는 당신의 손이 올라가는 것(물질적인 것)에 영향을 준다. 이렇게 몸과 마음은 서로 인과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철학에서는 이런 인과적 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그에게 있어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서로 독립적인 실체이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없다. 이 문제는 보통 심신 문제(mind-body problem)라고 불린다. 물론 이것은 데카르트 철학 특유의 문제만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심리철학 이론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등장했지만 여전히 문젯거리로 남아있다.

 

 

 

 

  1. 퓌론주의

    기원전 1세기경에 만들어진 학설이며, 이것의 존재는 섹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에 의해서 기록되어 알려졌다. 기원전 3세기 말 경에 살았던 퓌론(Pyrrho)의 이름을 딴 것이다. 퓌론주의에 따르면 진리라고 생각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설령 그런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진리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2. 심리철학

    마음에 대한 연구를 하는 철학의 한 분야다. 최근 뇌과학, 인지심리학 등의 발전과 더불어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주장하는 현대 철학자의 수는 그리 많지 않으며, 대부분이 심신일원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심신일원론도 행동주의, 심신동일론, 기능주의 등으로 다양하다.

 

 

 

박일호 / 경희대 포스트 닥터 연구원
대학에서 건축공학, 대학원에서는 과학철학을 전공했다. 고려대학교에서 확률과 인식론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몇 가지 교양 과학책을 번역했으며, 논리학과 분석철학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10년 5월 19일 수요일

알툴바의 Easter Egg

Easter Egg라 함은 프로그램의 숨은 기능으로

 

부활절 달걀을 장난치던 풍습 그러니까 삶은 달걀안에 삶지 않은 달걀을 숨겨놔

그것을 받은 사람이 봉변당하게 하는 풍습에서 유래된 말이다....

 

오늘은 알툴바의 Easter Egg를 소개 하려고 한다....간단하다

 

알툴바 기능중에 마우스액션이라는 기능이 있는데 오른쪽 클릭을 하고 Drag를 하면 색이 칠해지면서 표시가 되는데

 

이것을 끊기 않고 아래와 같이 화면이 꽉차도록 계속 칠한다

 

마우스 액션으로 화면칠하기

알툴바 마우스 액션으로 화면을 가득 칠한다.

 

이렇게 계속 칠하면(꾀 많이 칠해야 함) 다음과 같은 웃긴 시가 나타난다....

 

 

"도전은 무모하고, 창조는 모호하지만"

 

크크크 내가 오른쪽 클릭하고 마우스액션으로 그림을 그렸던게 도전이란다....그래서 그 도전은 무모하단다.....

 

그래도 끝내 격렬해주니 뭐 고맙다...흐흐흐흐흐....

 

이상 알툴바 Easter 에그 였다...^^

2010년 5월 15일 토요일

요즘 구상 중인 XML as Sequence Query Language : XaSQL

요즘 구상중인 Application이다.

내용은 이렇다 DB를 앞으로 Data 표준이될 XML을 이용하여 Source로 삼고 이것을 조회하거나 할 때, 개발자들이 흔히 이용하는 SQL로 조회하여 보여주고, DML로 데이터를 가공하는 Application이다.

이점은
1.Smart phone과 같은 소형 기기에서 간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소형 DB를 구현할 수 있음
2.Data를 Import시키는 것이 자유롭다.

특징은
1.특정 공간에 두고 App을 구동하며 Data(XML file)를 자동으로 읽어와 조회할 수 있게 해준다.
2.하나의 XML은 하나의 Table이다.
3.SQL언어로 데이터를 조회하기 때문에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

다음은 mind map으로 구성해본 요소들이다.

XaSQL Program Mind map image

XaSQL Mind map


1. Data Access Method는 Data를 import하거나, create했을 때, 이것을 읽어 오는 기술을 제공합니다.
    ㄱ.Import 방식의 데이터 추가:XML을 복사해서 입력하는 것이다.
    ㄴ.Create 방식의 데이터 추가: DDL언어를 이용하여 XML파일을 만들고, 컬럼은 DTD파일로 저장하여 새로 만들        어진 XML          Data의 컬럼을 정의 합니다.

2. Data Manufacture Method는 Data를 조회하거나 가공하는 기술을 제공합니다.
   ㄱ.SQL형식의 언어와 같은 방식의 언어로 XML 데이터를 조회한다.
   ㄴ.SQL형식의 언어와 같이 데이터를 조작(Insert, Update, Delete)을 한다.

3. Data View Method는 DMM(Data Manufacture Method)에서 가공 또는 조회되는 데이터를 보여주는 기술 제공합니다.
  ㄱ.View All Column: 서로 상이할 수 있는 데이터의 Entity를 모두 컬럼화 하여 해당하는 데이터를 Row의 Column에 보여줍니다.
  ㄴ.View Average Column: 평균적 즉, 일반적으로 보여줘야 할 데이터당 Entity를 조회하여 컬럼을 만들어 Row의 Column에 보       여줍니다.

예시

Text.xml

<Test>
  <Data>
    <name>홍길동</name>
    <age>18</age>
    <height>183</height>
    <weight>73</weight>
    <sex>Male</sex>
  </Data>
  <Data>
    <name>김부자</name>
    <age>56</age>
    <height>153</height>
    <weight>73</weight>
    <sex>Female</sex>
  </Data>
</Test>

============================================

*명령어 입력-표준 SQL형식을 따른다*

SELECT * FROM Text /*<--Text는 Text.xml을 말함*/;

============================================

*실행결과*

   | name | age | height | weight | sex |              /*<==각 데이터의 Entity를 column화 함*/
1   홍길동   18       183       73       Male            /*<==각 데이터를 Column에 맞게 나열함
2   김부자   56       153       73      Female

============================================

이렇게 동작하는 프로그램이다.

2010년 5월 6일 목요일

애플 아이패드 전파인증 OK

애플 아이패드의 국내 반입이 곧 허용된다. 아이패드가 전파연구소 시험결과 국내 기술기준에 적합 판정을 받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아이패드에 대한 전파연구소 기술 시험을 최근 시행한 결과, 국내 전파이용환경에 미치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 냈다고 6일 밝혔다.

 

방통위는 이 같은 시험결과를 관세청에 알려 세관에서의 아이패드 반입 차단 조치를 이르면 6일 백지화 할 계획이다. 개인당 1대, 연구용으로 5대까지의 아이패드 반입이 가능해진다.

방통위 오남석 전파기획관은 “아이패드를 사용해도 통신망에 혼선이나 간섭 등의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며 “관세청에 사실을 통보하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판매 목적으로 1대 이상을 반입하는 경우 처벌 대상이기에 엄격한 단속을 벌일 것이라고 방통위는 밝혔다.

 

방통위 관계자는 “온라인 사이트 등을 조사해 상업적인 아이패드 반입을 차단하겠다”며 “국내 전파환경 보호를 최우선으로 둔 조치”라고 말했다.

 

아이패드는 전파법상 정부 인증을 받아야 반입할 수 있는 무선인터넷 기능 탑재 제품이다. 인증 없이 아이패드를 반입하면 2천만원 이상 과징금을 부과한다.

 

그동안 애플은 아이패드 국내 인증을 받으려는 움직임이 없었다. 개인 사용자들이 인증을 받으려면 200~300만원 정도 비용과 복잡한 절차가 필요해 아이패드 무단 반입이 이어졌었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아이패드 반입을 부분 허용하면서 사용자 편의를 지원하고, 세관 단속 어려움은 줄인다는 계획이다.

 



트랙백 주소 : http://www.zdnet.co.kr/Reply/trackback.aspx?key=20100506103833

2010년 5월 3일 월요일

중세 교부철학의 시작

노략질을 일삼던 해적이 알렉산더 대왕에게 잡혀왔다. 대왕이 꾸짖었다. “너는 도대체 왜 사람들을 괴롭히는가?” 해적이 거침없이 대꾸했다. “폐하가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유와 같습니다. 단지 저는 배 한 척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해적이라 부르고, 폐하는 큰 함대를 거느리고 일을 하기 때문에 황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신의 나라 De civitate Dei] 4권에 등장하는 예화다. 그는 여기서 전쟁을 통한 제국의 확장이 해적의 강탈행위와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묻는다. 그리고 명쾌하게 결론을 내린다. 정의가 없는 국가는 해적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예화를 키케로가 쓴 [공화국]에서 빌어왔다(키케로의 기록은 실전되었다).


서양 고대사를 들여다보면 큰 위기가 세 차례쯤 있었다. 그 때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이 그 위기에 대한 철학적 진단을 내렸다.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도시 국가가 심각하게 부패했을 때 내려진 처방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국가]다. 그로부터 4백 년쯤 뒤 로마 공화정이 붕괴했을 때 키케로는 [공화국]을 집필했다. 또 다시 4백 년이 흘러 로마 제국이 무너지는 시점에서 나온 것이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22권의 대작 [신의 나라]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책을 쓴 결정적 계기는 410년 게르만족의 일파인 서고트족에 의해 로마가 점령된 사건이었다. 그때까지 7백 년 동안 로마는 단 한 차례도 적군에 점령된 적이 없었다. 그런 위대한 로마가 야만족에 의해서 맥없이 짓밟힌 것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역사의 스펙트럼을 넓혀서 해석하면, 이 사건은 유럽을 호령했던 로마의 영광이 꺾이는 결정적 사건이자, 머지 않아 한 시대의 막이 내릴 것이라는 징후이기도 했다. 종이 호랑이로 전락한 로마는 그 후 게르만족의 계속적인 침공을 받아 476년 마침내 역사 무대에서 사라진다. 역사가들은 로마 멸망을 기점으로 유럽에서 고대가 끝나고, 중세가 시작한다고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을 읽기 위해서 우리는 세 개의 좌표를 그린다. 첫 번째는 시간 좌표다. 그는 고대의 끝 자락에 위치한 마지막 고대 철학자이며, 동시에 중세의 첫 대목에 등장하는 최초의 중세 철학자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공간 좌표다. 그는 제정 로마 시대의 라틴 교부에서 활동했지만, 그가 주로 활동한 것은 유럽이 아니라 북아프리카였다. 그는 지금의 알제리에 있는 히포 레기우스의 주교로 34년 동안 봉직했다. 그를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 당시 히포는 북아프리카에서 카르타고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고대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놓고 한때 로마와 자웅을 겨루었던 카르타고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수사학을 공부했으며, 로마에서는 수사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렇게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적으로는 고대와 중세의 경계지대에 위치해 있고, 공간적으로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넘나들었다.

 

세 번째는 우리가 좀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하는 철학 좌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과 원시 기독교를 접목한 인물이다. 그는 서양 사상의 원형을 이루는 두 개의 전통, 곧 그리스 철학에 배경을 둔 헬레니즘 전통과 기독교 종교에 배경을 둔 헤브라이즘 전통을 하나로 묶어 기독교철학 또는 신학을 출범시켰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계시 종교로서의 기독교에 플라톤 철학의 옷을 입혔다. 그는 교부철학을 정립한 중세 초기의 최대 철학자, 또는 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잠깐! 기독교는 철학이 아니지 않은가? 종교란 추상적인 이론체계가 될 수도 없고, 또 굳이 이론체계로 만들 필요도 없지 않은가? 중세철학의 권위이며 성공회 신부이기도 한 코플스톤은 기독교는 하나의 계시 종교로 세상에 나타났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는 원시 기독교의 기본 과제는 기독교를 하나의 철학 체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고 세상을 회개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의 말씀은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그러나 선후관계로 보면 기독교도는 예수의 말씀이 이치에 맞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반면 철학은 항상 이치를 따진다. 이치에 맞으면 받아들이고, 이치에 맞지 않으면 내친다. 그것이 바로 철학의 기본 속성이다. 바로 이 교차 지점에 믿음(fides)과 이성(ratio) 사이의 긴장 관계가 숨어있다. 그러면 믿음과 이성은 대립과 충돌의 관계인가, 아니면 균형과 조화의 관계인가? 서양 사상의 지적 전통은 양자의 관계를 후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1998년 로마 가톨릭 교황 바오로 2세가 발표한 “믿음과 이성은 인간 정신이 진리를 바라보면서 날아오르는 두 날개”라는 [신앙과 이성의 회칙]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종교는 이성과 배치되지 않고, 오히려 이성을 요청한다는 메시지다. 믿음은 광기와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함께 날아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과 이성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두 날개라는 견해는 중세 후기에 등장하는 스콜라 철학에서 공고화되지만, 믿음과 이성의 균형을 중시하는 것은 기독교 신학의 토대를 세운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이미 강조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기독교로 귀의하기까지의 정신 편력은 그가 쓴 [고백록]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은 서양 자서전 문학의 효시로서, 어린 시절의 부끄러운 기억과 젊은 날의 방황에 대한 고백을 기도문 형식으로 담고 있다. 팔딱팔딱 튀는 문학적 감수성이 담긴 글을 읽는 맛도 좋지만, 당대 최고의 지성이 그리는 고대 지중해 세계의 지적 풍토를 읽는 맛도 쏠쏠하다. 어린 시절 한번쯤은 해봤음직한 과일 서리를 두고 “과일이 탐이 나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친구와 과일을 훔치는 행위를 사랑했기 때문에 한 것이다”라고 표현한 대목에서는 심리 묘사가 뛰어난 한 편의 소설을 읽는다.  [고백록]이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의 근원을 선의 결핍에서 찾는다. 악을 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죄를 범하는 인간 의지의 나약함에서 찾았다.

 

그래서 이웃집 과수원에서 과일을 따먹는 일과 같은 어린 시절의 장난까지도 악의 증거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이런 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우구스티누스의 답은 미약한 인간은 혼자 힘으로 이 악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고, 인간을 도와주는 신의 전능한 의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인간을 구원하는 신의 의지 –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신의 ‘은총’이라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를 체계적인 논리로 정립한다. 아마도 원시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체계적 교리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왜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성령으로 태어난 인간이었는지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왜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이 서로 다른 위격을 가지면서도 하나가 될 수 있는지 삼위일체에 관한 질문을 던질 필요도 없고, 그에 대한 답을 할 필요도 굳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세계 종교로 발전하면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로부터 기독교를 지키기 위해서, 또 신학 이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논리를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이 점차 커졌다. 기독교의 진리를 지적으로 변호하는 변증론(apologetics)이 신학의 주요 분야로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에 플라톤 철학의 옷을 입혔다. 플라톤은 인간은 진리를 보지 못하는 쇠사슬에 묶인 동굴 속의 죄수와 같다고 했다. 지성(nous)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육안의 눈으로만 보는 것은 한갓 그림자에 불과하고, 그 그림자를 만드는 진짜 세계는 우리가 갇힌 동굴 속 너머 저편에 있다고 했다. 플라톤이 말하는 진짜로 실재하는 세계, 곧 이데아의 세계는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서 신의 세계가 되었다. 플라톤은 우리가 사는 세계는 현상 세계라고 했다. 우리는 현상 세계에 있는 것들을 감각을 통해서 보고 듣고 만지면서 그것이 진짜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이데아의 모사에 불과한 가짜라고 했다. 정말 실재하는 것, 곧 이데아는 현상 세계에서는 망각되었다고 했다. 플라톤은 몸과 감각에 묶여 망각된 사실을 다시 기억해내는 것을 철학의 사명으로 삼았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와서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은 신의 개념이 되었다. 신은 완전한 실재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곧 플라톤이 말하는 현상 세계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와서는 불완전한 실재가 되었다. 그 사이에 위치한 인간은 한편으로는 영혼을 가진 완전한 실재이면서 동시에 육체를 가진 불완전한 실재가 된다. 플라톤은 참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이성의 지도를 받은 절제와 조화를 강조했다. 플라톤은 그러한 자기 절제를 통해서 이데아를 기억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 참된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은 신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완전한 실재인 신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를 기억해 낸다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완전한 실재인 신을 기억해내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적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철학이라는 옷을 입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살았던 시대는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허용되고, 또 마침내 로마제국의 공식 국교가 되는 시기였다. 제국이 공인한 유일무이한 종교로서 기독교가 가진 당면한 과제는 어떻게 기독교를 로마인에게 이치에 맞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은 이 물음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나라]에서 신을 멀리 하는 나라를 하나의 강도 집단으로 봤다. 그것은 신을 멀리 하려는 인간의 교만의 결과이다. 이러한 교만한 자의 공동체가 아닌, 겸손하게 신의 은총에 의한 구원을 고대하는 공동체가 바로 신의 나라다. 여기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신의 나라는 기독교 공동체 곧 교회를 말한다. 이렇게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제국이 사라진 이후에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론체계(교의)를 구축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공동체에 필요한 제도로서의 교회이론을 세운 ‘교회의 아버지’(교부)였다. 그가 세운 이론을 교부철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정재영 / 철학자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2,30대에 언론사 기자를 지냈다. 나이 40에 늦깎이 유학생으로 영국에 건너가 워릭대에서 사회 존재와 인간의 이해에 대한 리얼리즘 접근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 양평에 있는 대부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철학 저술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 2권이 있다.